지난 글에서는 나오키상 수상작 『용의자 X의 헌신(容疑者Xの献身)』이 지금까지 읽히는 이유를 살펴보았으며 이번 편에서는 20년 넘게 회자되고 있는 또 하나의 대표작 『백야행(白夜行)』을 들여다보겠다고 예고했습니다. 흥미로운 사실 하나를 먼저 짚고 가겠습니다. 『백야행』은 나오키상 후보에 올랐지만 끝내 수상하지 못한 작품입니다. 그런데도 오늘날 많은 독자와 평론가들이 이 작품을 히가시노 게이고의 최고작으로 꼽습니다. 낙선과 대표작 사이의 이 간극이야말로 『백야행』을 이해하는 첫 번째 열쇠입니다. 결말을 밝히지 않는 선에서 이 작품이 왜 지금까지 다시 읽히는지 세 가지 이유로 짚어보겠습니다.

이 글에는 결말과 핵심 반전에 관한 내용이 없습니다. 작품을 읽기 전 어떤 이야기인지 판단하는 데 필요한 정보와 감상 포인트만 담았습니다.
작품 정보 한눈에 보기
| 항 목 | 내 용 |
| 작품 | 『백야행(白夜行)』 |
| 작가 | 히가시노 게이고(東野圭吾) |
| 연재 | 슈에이샤(集英社) 『소설 스바루(小説すばる)』 1997년 1월호~1999년 1월호 |
| 출간 | 1999년 8월, 장편 추리소설 (長編推理小説) |
| 나오키상 | 1999년 하반기 제122회 나오키상 후보 - 낙선 |
| 판매 | 2006년 1월 100만 부 돌파, 2010년 12월 200만 부 돌파 |
| 무대화 | 2005년 연극화 |
| 드라마화 | 2006년, TBS, 야마다 타카유키(山田孝之)·아야세 하루카(綾瀬はるか) 주연 |
| 영화화 | 한국 2009년(감독 박신우, 손예진·고수·한석규 주연) / 일본 2011년(감독 후카가와 요시히로(深川栄洋), 호리키타 마키(堀北真希)·코라 켄고(高良健吾) 주연) |
1. 19년 동안 두 사람의 속마음을 단 한 번도 보여주지 않는다
1973년 여름 오사카의 폐건물에서 전당포 주인이 살해된 채 발견됩니다. 용의자가 여럿 떠오르지만 사건은 결국 미궁에 빠지고 형사 사사가키(笹垣)만이 오랫동안 이 사건을 붙들고 있습니다. 피해자의 아들인 키리하라 료지(桐原亮司)와 용의자로 지목됐던 여성의 딸인 니시모토 유키호(西本雪穂). 어두운 눈빛의 소년과 남달리 아름다운 소녀는 이후 전혀 다른 길을 걷는 것처럼 보이지만, 두 사람 주변에서는 이따금 섬뜩한 사건의 흔적이 스쳐 지나갑니다. 그렇게 19년의 세월이 흐릅니다.
이 소설의 가장 큰 특징은 여기서 시작합니다. 작가는 료지와 유키호, 두 주인공의 내면을 단 한 줄도 직접 서술하지 않습니다. 독자는 오직 주변 인물들의 시선과 사건의 정황만으로 두 사람의 삶을 짐작해야 합니다. 무엇을 생각하는지, 무엇을 느끼는지 끝내 알려주지 않는 이 '밝히지 않는' 서술 방식은 읽는 이로 하여금 계속해서 빈칸을 스스로 채우게 만듭니다. 결말을 모른 채 읽을 때 가장 강하게 살아나는 긴장이자 이 작품이 20대에 읽을 때와 40대, 60대에 읽을 때 전혀 다른 인상을 남긴다고 이야기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2. 낙선한 화제작 - 나오키상 심사위원들의 엇갈린 평가
『백야행』은 1999년 하반기 제122회 나오키상 후보에 올랐지만 나카니시 레이(なかにし礼)의 『나가사키 부라부라부시(長崎ぶらぶら節)』에 밀려 수상하지 못했습니다.
당시 심사위원들의 평가를 보면 흥미로운 지점이 드러납니다. 정교하게 깔린 복선과 끝까지 몰입하게 만드는 전개력에 대해서는 여러 심사위원이 높은 점수를 줬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앞서 언급한 '내면을 보여주지 않는' 서술 방식을 두고는 평가가 크게 갈렸습니다. 일부 심사위원은 이를 두고 인물에게서 인간적인 온기가 느껴지지 않는다거나 사건이 지나치게 도식적으로 짜인 게임처럼 읽힌다고 지적했습니다. 반면 다른 심사위원은 같은 지점을 두고 대단히 대담하고 완성도 높은 작법이라 평가했습니다.
결국 표는 갈렸고 수상은 불발됐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당시 감점 요인으로 지적됐던 바로 그 '설명하지 않는' 서술이야말로 『백야행』을 다른 추리소설과 구별 짓는 고유한 매력으로 재평가받고 있습니다. 낙선작이 오히려 대표작으로 남는 드문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나오키상(直木賞)이란? 일본의 대표적인 대중문학(大衆文学) 문학상으로 정식 명칭은 '나오키 산주고상(直木三十五賞)'입니다. 신인 작가의 순수문학(純文学)을 대상으로 하는 아쿠타가와상(芥川賞)과 함께 일본 출판계에서 가장 대중적이고 권위 있는 상으로 꼽힙니다.
주로 대중성과 오락성이 뛰어나면서도 완성도 높은 작품을 선보인 중견 작가에게 수여됩니다. 따라서 이 상을 받았다는 것은 곧 대중성과 작품성을 모두 인정받은 일본 최고의 베스트셀러 작가 반열에 올랐음을 의미합니다. 히가시노 게이고(東野圭吾) 역시 이 나오키상(直木賞)의 문을 꾸준히 두드렸으며,『백야행(白夜行)』을 포함해 무려 다섯 번의 낙선 고배를 마신 끝에 제134회에서『용의자 X의 헌신(容疑者Xの献身)』으로 마침내 상을 거머쥐게 됩니다.
3. 제목이 말해주는 것 - '백야'라는 은유
'백야(白夜)'는 본래 고위도 지역에서 해가 진 뒤에도 혹은 해가 뜨기 전에도 하늘이 완전히 어두워지지 않고 옅은 빛이 오래 남아 있는 현상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일본은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지역이 아니기 때문에 이 제목은 처음부터 실제 자연현상이 아니라 은유로 읽힙니다. 완전한 낮도 완전한 밤도 아닌 시간 - 그 경계 위에서 살아가는 삶은 겉으로 드러난 삶과 감춰진 삶 사이를 오가는 두 주인공의 19년과 자연스럽게 오버랩됩니다. '백야'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작품을 읽으며 직접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드라마 방영 이후 다시 불붙은 인기
『백야행』은 출간 직후보다 오히려 시간이 지나면서 더 큰 반향을 얻은 작품입니다. 2005년 연극으로 먼저 각색됐고 2006년 야마다 타카유키·아야세 하루카 주연의 TBS 드라마가 방영되면서 판매량이 크게 뛰었습니다. 드라마 방영 전인 2005년 11월까지 약 55만 부였던 판매 부수는 방영 직후인 2006년 1월 100만 부를 돌파했고 2010년 12월에는 200만 부를 넘어섰습니다.
이후 2009년 한국에서 손예진·고수·한석규 주연의 영화 <백야행: 하얀 어둠 속을 걷다>로, 2011년에는 일본에서 호리키타 마키·코라 켄고 주연의 영화로 각각 만들어지며 여러 나라에서 반복해서 다시 읽히고 다시 만들어지는 작품이 됐습니다.
마치며: 하얀 밤을 걷는 두 사람을 지켜본다는 것
제목의 '백야'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주인공 두 사람의 삶과 조망해 보는 것이 이 작품을 음미하는 중요 부분이 되는 것 같습니다. 소설 안에서 주인공의 드러나지 않는 마음을 짐작하며 상상하게 하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법이 이 책을 손에 쥐면 단숨에 읽게 만드는 진짜 묘미입니다. 여러분도 히가시노 게이고만의 정통 사회파 추리소설의 깊은 여운을 함께 해보시기를 권합니다.
리메이크 된 영상들이 원작의 19년이라는 시간과 '설명하지 않는' 구조를 어떻게 풀어냈는지는 시리즈 후반부에 마련한 "원작 vs 영상화" 특집에서 자세히 비교해보겠습니다.
다음 편에서는 히가시노 게이고가 추리소설이 아닌 얼굴을 보여준 작품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ナミヤ雑貨店の奇蹟)』을 통해 그려낸 또 다른 세계를 들여다보겠습니다.
* 참고: 연재·출간 경위와 판매 부수, 나오키상 후보 및 선고 내용은 일본 위키백과와 '나오키상의 모든 것(直木賞のすべて)' 사이트의 제122회 선평을 확인해 반영했습니다. 영상화 관련 사실관계는 한국어 위키백과, 씨네21, 일본 위키백과, 에이가닷컴(映画.com) 등의 정보를 확인해 반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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