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리를 글로 옮기는 일은 소설가에게 가장 어려운 숙제 가운데 하나입니다. 음악가가 주인공인 소설은 많아도, 연주 장면 자체를 끝까지 밀고 나가는 소설은 드뭅니다. 온다 리쿠(恩田陸)의『꿀벌과 천둥(蜜蜂と遠雷)』은 그 어려운 작업을 국내판 기준 700쪽 가까운 분량으로 해낸 책입니다.
이 책에는 특별한 기록이 하나 더 붙어 있습니다. 2017년, 심사위원들이 고르는 제156회 나오키상(直木賞)과 서점 직원들이 직접 뽑는 제14회 서점대상(本屋大賞)이 사상 처음으로 같은 작품을 수상작으로 올렸습니다. 문학적 완성도를 따지는 쪽과 "손님에게 자신 있게 권할 수 있는가"를 따지는 쪽이 같은 답을 낸 것입니다. 오늘은 결말을 남겨 둔 채, 이 소설이 어떻게 양쪽을 모두 설득했는지 제 나름대로 짚어 보려 합니다.
콩쿠르 하나를 통째로 소설에 담다
무대는 3년마다 열리는 가상의 요시가에 국제 피아노 콩쿠르(芳ヶ江国際ピアノコンクール)입니다. 소설은 1차 예선에서 시작해 2차, 3차 예선을 거쳐 본선까지 대회 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따라갑니다.
이 설정은 작가가 직접 보고 들은 경험에서 나왔습니다. 온다 리쿠(恩田陸)는 실제 대회인 하마마쓰 국제 피아노 콩쿠르(浜松国際ピアノコンクール)를 2006년 제6회부터 2015년 제9회까지 네 번 찾아가 취재했습니다. 음악 콩쿠르를 소설로 쓰겠다고 마음먹고 실제로 집필을 시작하기까지 약 5년이 걸렸고, 2009년부터 2016년까지 출판사 겐토샤(幻冬舎)의 문예지에 연재한 뒤 2016년 9월 단행본으로 묶었습니다. 구상부터 책이 나오기까지 무려 12년이 걸린 셈입니다.
저는 이 소설이 서점 직원들의 표를 얻은 이유가 콩쿠르라는 형식 자체에 있다고 봅니다. 콩쿠르 예선이 끝날 때마다 누군가는 떨어집니다. 독자는 라운드가 바뀔 때마다 마음에 둔 인물이 다음 무대에 설 수 있을지 조마조마해집니다. 피아노를 전혀 몰라도 이 긴장감은 그대로 전해집니다. 700쪽이라는 분량이 부담스럽지 않게 넘어가는 건, 이야기 전체가 한 편의 스포츠 경기처럼 짜여 있기 때문입니다.
네 명의 연주자, 음악과 맺는 네 가지 관계
이야기를 이끄는 중심축은 네 명의 참가자입니다.
열여섯 살 가자마 진(風間塵)은 음대를 나오지도, 콩쿠르에 나가 본 적도 없는 소년입니다. 양봉을 하는 아버지를 따라 이곳저곳을 옮겨 다니며 살았고, 세상을 떠난 거장 호프만(ホフマン)이 그를 발견했다는 사실만으로 대회의 화제가 됩니다.
스무 살 에이덴 아야(栄伝亜夜)는 한때 천재 소녀로 불렸지만, 열세 살에 어머니를 잃은 뒤 무대에서 피아노를 치지 못하게 된 음대생입니다.
열아홉 살 마사루 카를로스 레비 아나톨(マサル・カルロス・レヴィ・アナトール)은 일본계 3세 페루인 어머니와 프랑스 귀족 혈통의 아버지를 둔, 줄리아드 음악원의 유력한 우승 후보입니다.
그리고 스물여덟 살 다카시마 아카시(高島明石)는 음대를 졸업한 뒤 악기점에서 일하는 회사원이자, 아내와 아이를 둔 가장입니다.
이 네 사람은 경쟁자이면서 음악을 대하는 서로 다른 태도를 대변하기도 합니다. 타고난 감각으로 음악을 즐기는 사람과 잃어버린 음악으로 돌아오려는 사람이 있고, 정통 교육을 거쳐 정점을 노리는 사람과 생활을 꾸리며 음악을 놓지 않으려는 사람이 한 무대에 섭니다. 그래서 읽는 사람마다 마음이 가는 인물이 조금씩 갈립니다.
저의 경우 등장인물 중 아카시에게 가장 오래 마음이 머뭅니다. 직장을 다니며 연습 시간을 쪼개 대회에 나온 그는 우승 후보들 사이에서 가장 평범한 참가자입니다. 작가인 온다 리쿠(恩田陸)도 생명보험회사와 부동산회사에 다니며 7년 가까이 글을 썼습니다. 생활과 예술 사이에서 버티는 사람을 이렇게 따뜻하게 그려 낸 데에는 작가의 그 시간이 묻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목의 '꿀벌'이 양봉가의 아들인 진과 이어져 있다는 건 첫 장부터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천둥', 원제로는 '먼 곳의 천둥(遠雷)'은 무엇을 가리킬까요. 이 답은 제가 미리 말씀드리기보다, 직접 읽으며 찾아보시는 쪽이 훨씬 즐겁습니다.
소리를 문장으로 옮긴다는 것
나오키상(直木賞) 심사위원들이 높이 산 쪽은 아마 이 부분일 겁니다. 이 소설의 연주 장면은 전문적인 악보 용어보다 그 소리를 들은 사람이 떠올리는 풍경과 감정으로 채워집니다. 같은 연주를 심사위원과 경쟁자, 객석이 각자 다르게 듣고, 그 감상이 겹쳐지면서 한 곡이 입체적으로 살아납니다. 피아노 소리를 직접 들려줄 수 없는 종이 위에서, 독자가 그 소리를 스스로 상상하게 만드는 방식입니다.
국내에서도 소설에 등장하는 피아노곡을 모은 공식 음악집 CD가 책과 함께 소개되기도 했습니다. 책을 덮은 독자가 그 곡을 실제로 들어 보고 싶어진다는 점에서 이 음반이 작가가 소리를 문장으로 옮기는 데 성공했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스크린 위의 콩쿠르
2019년 10월에는 일본에서 동명 영화로도 개봉했습니다. 이시카와 게이(石川慶) 감독이 연출과 각본, 편집까지 맡았고, 아야 역은 마쓰오카 마유(松岡茉優), 아카시 역은 마쓰자카 도리(松坂桃李), 마사루 역은 모리사키 윈(森崎ウィン), 진 역은 신인 스즈카 오지(鈴鹿央士)가 연기했습니다. 일본 현지 흥행 수입은 약 9억 엔을 기록했습니다.
소설과 영화는 같은 콩쿠르를 정반대 방향에서 다룹니다. 영화는 실제 피아노 소리를 들려줄 수 있는 대신 700쪽의 서사를 두 시간 남짓으로 압축해야 하고, 소설은 소리를 들려줄 수 없는 대신 네 사람의 속마음과 객석의 술렁임까지 오래 머물 수 있습니다. 한쪽이 비워 둔 자리를 다른 쪽이 채우니, 어느 쪽을 먼저 접하든 나머지 한쪽도 자연히 궁금해집니다.
재미와 문학성이 한 무대에서 만날 때
온다 리쿠(恩田陸)는 콩쿠르라는 틀로 독자가 끝까지 책장을 넘기게 만들고, 네 사람이 음악과 맺는 관계와 소리를 그려 내는 문장으로 그 긴장을 문학의 자리까지 끌어올렸습니다. 서점 직원이 손님에게 권하고 싶은 재미와 심사위원이 인정하는 완성도를 한 권에 함께 담았으니, 두 상이 같은 책을 고른 것도 자연스럽습니다. 저는 구상부터 단행본 출간까지 걸린 12년이 그 둘을 함께 붙잡는 데 쓰인 시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은 소설을 읽다가 거기 나온 음악을 실제로 찾아 들어 본 적이 있으신가요? 그때 들은 소리가 책 속에서 상상한 소리와 같았는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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